관상의 기본
왜 우리는 상을 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일까? 상대와의 연관관계, 평가의 목적 ,자신의 안위나, 영리적인 목적, 기타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업적인 관계라면 영리가 우선이다. 겉으로 지아무리 부정해도 이미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그 다음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다 나은 진로를 행하게 하도록 조언 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떨때는 안타까운 마음에 아는 것이 부족하더라도 나름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자라면 긁어부스럼이요, 조금 알아도 주접 떤다는 소리를 면치 못할 것이다. 차라리 상대가 원치 않으면 하지 말것을 하면서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 생각하지도 않는데 먼저 떠들지 마라, 이것이 원칙이다. 팔요한 경우라면 혼자 조용히 음미 하는 것이 순리다.
일반적으로 상을 본다하면 잘생긴 부분을 위주로 하여 논한다. 많은 부분에 대한 세세한 대화이다. 잘 생기면 ? 그 기준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일단은 그릇된 판단을 한다. 신체에 장애가 있거나 생김세 즉 구조적인 결함이 있나 없나를 판단한다. 무난하고 원만하면 생활 삶 자체가 원할하고 평온 할 것이다 선입감이 작용한다. 이것이 앞선 다면 당신은 관상을 논할 때 위험사항이 많다.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좋을까?
사주를 감명하면서 오행이 고루 갖추어지면 일단 무난한 사항으로 보지만 그저 평온함 자체지 특색이 없는 사주다. 강함과 약함 , 무엇인가 대응 하는 적응력이 필요한가? 운에서 보탬이 되어 그 모자라는 부분이 채워질 것인가? 운에서 기운이 보탬이 된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좋은 운 입니다. 주면 뭘하나 받아 먹지를 못하는데 운이 좋아도 별 볼일 없이 오히려 역으로 반대의 결과가 발생,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운은 좋은데------ 멍멍이 소리다.
시대가 변화를 해도 엄청 변하고 있다. 세상을 당신은 얼마나 안다 할 수 있는가?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기준의 변화다. 고지식한 논리로 적응한다면 관상을 논하지 마라. 상의 기본은 변하는 것이다. 변하는 흐름을 읽는 것이 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아는 것이 부족하면 항상 모자람이다.
실생활의 기본으로 보자. 흔한 것이 정치인이다. 많이 노출되고 적나라 하게 까발려지지 않는가! 그들은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지금 당장 현재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급급한다. 예전에는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고 기록에 남아도 전해지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아니다. 백년, 천년이 지난도 각자의 치부가 다 드러난다. 어디엔가 기록으로 남아 보존되는 시대다. 한심하고 불쌍한 인간들이다.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할까? 어떤이는 과거의 오래전에 발생된 불미스런 일로 그것이 드러나 전면에 부각, 조용히 물러나 생활하지 않는가! 과거를 반선하면서 말이다. 그것도 편생 아니 숨을 거두기 전까지 말이다. 지금은 지나간다 치자. 당신의 후손들은? 이미 조상들은 부관참시라는 형별아닌 이상한 행동도 유발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그보다 더 무서운 형별이다. 다 생긴대로 노는 것이다. 잘 생긴것 같아도 아니다. 무엇이 아닐까? 그것을 찾는 것이 진짜 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 공부할 사안이다.